드디어 혼란스러운 2024년이 지나갔다. 회고 글은 항상 새해가 오기 전에 썼는데 이번에는 늦었다. 개인적으로 너무 많은 변화들이 일어나고 있어 회고를 하기에는 이르다고 생각했다. 조금 늦었지만 이제라도 회고해본다.
지난 1년간 한 활동
퍼듀대학교 Visiting Scholar (24.01 ~ 24.02), 논문 작성 (~ 24.09)
퍼듀 Visiting Scholar (K-SW 스퀘어) 기록 - 미국 생활편
오랜만에 기술이 아닌 일상을 주제로 글을 쓴다. 올해 2024년 1-2월은 미국 퍼듀 대학교에서 Visiting Scholar로 퍼듀 및 한국인 학생들과 컴파일러 관련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정확한 프로그램 명은 I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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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통신기획평가원에서 진행한 K-SW 스퀘어 프로그램으로 퍼듀 대학교에서 메모리 릭 주제로 2개월간 연구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프로그램이 끝난 이후에도 시간을 더 투자해 9월까지 논문을 작성했다. 첫 연구 프로젝트이고, 또 프로젝트 리딩/매니징을 처음 해본 만큼 우여곡절이 많았다. 이 과정에서 몇가지 배움을 얻었다.
- 연구는 연구 동향에 기반하여 이전에 없던 새로운 주장을 하는 것이다. 좋은 연구는 새로운 주장을 하되 근거를 통해 주장이 뒷받침되는 견고한 주장이어야 하며, 그 주장이 세상에 좋은 영향을 미치는 연구이다. (좋은 연구를 하기는 쉽지 않다.)
- 리더는 프로젝트의 방향을 제시하는 역할이다. 프로젝트가 산으로 가지 않으려면 리더가 명확한 방향을 제시해야 한다.
- 매니저는 인적 자원을 관리하는 사람이다. 각자가 맞는 역할을 할 수 있도록 각 팀원의 특성, 업무 특성을 파악하여 일을 분배해야 한다. 또한 업무가 원활하게 진행되려면 명확한 소통을 거쳐서 팀원과 매니저가 같은 방향을 바라보고 있는지 여러 번 확인하는 것이 좋다.
4학년 1학기 (24.03 ~ 24.06)
작년에 백마인턴십 기간동안 CXL 스펙을 보면서 하드웨어 설계에도 흥미가 생겼다. 학교에서 뭔가를 배울 기회가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니까 아쉬워서 전자회로, AI SoC 설계 수업을 수강했다. 컴퓨터 구조는 많이 공부했어도 하드웨어 설계 분야는 정말 생소했는데—그래서 더 재미있었다. 되돌아보면 나는 항상 새로운 걸 배우는 걸 좋아했다. 다만 취미로는 좋을지 몰라도 분야를 바꿀 정도로 재미있지는 않았다. (사람이 살면서 하고 싶은 걸 다 할 수는 없다.)
NVIDIA 인턴십 (Security System Software Engineering) (24.06 ~ 24.11)
NVIDIA에는 원래 인턴을 잘 뽑지 않는데, 운이 좋게 인턴십 기회를 얻어 NVIDIA의 Tegra SoC에 들어가는 보안 소프트웨어 (for TEE, SE)를 개발하게 되었다. 이것도 참 순탄치는 않았는데, 2023년 12월에 이력서를 넣고 연락이 없어서 거의 잊고 있었다가, 2024년 2월 즈음에 갑자기 연락이 와서 면접을 4번 정도 본 다음에야 인턴을 시작했다. 모든 면접은 함께 일할 팀원들과 봤고, 팀이 한국 뿐만 아니라 미국, 대만, 인도 등에도 분포해있었기 때문에 일부 면접은 영어로 면접을 봐야했다.
도메인 자체는 보안 소프트웨어 엔지니어지만, 업무 자체는 새로운 보드에 소프트웨어를 올리는 BSP에 가까웠다. 인턴십 프로젝트 자체는 엔비디아 내부 프로젝트의 Rust 도입에서 생기는 문제들을 분석하고 해결하는 것이었고, 이후 인턴십을 연장해서 실제 제품에 들어가는 기능을 개발했다. BSP 업무를 예전에 해본 적은 없었기 때문에 새로운 것들을 배웠다. 특히 디버깅 실력이 많이 늘은 것 같다.
SK하이닉스 인턴십 (Linux kernel MM) (24.12 ~ 25.01)
12월부터는 SK하이닉스 메모리 시스템 연구소 (MSR) 인턴을 하며 SK하이닉스의 차세대 CXL 메모리를 위해 리눅스 커널, libnuma, numactl을 개발했다. 취미가 아니라 일로써 오픈 소스를 해본 것은 처음이라 많이 설레고, 또 재미있었다. 무엇보다 리눅스 커널 메모리 관리 서브시스템 개발을 일로 할 수 있다는 점이 가장 매력적이었다 (이천 기숙사에서 분당까지 출퇴근 하는 건 조금 힘들었지만 ㅎ). 연구소다보니 역량이 뛰어난 석박사 출신 분들이 많이 계셨고, 연구 동향과 개발 동향을 잘 아시는 분들, 지식과 경험 뛰어난 분들이 계셔서 배울 것이 많았다. 일도 참 재미있었지만 같이 일했던 사람들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좋은 사람들.
Oracle Linux Core Kernel Team (25.02 ~)
2024년 동안 여러 회사에 지원하고 면접을 보고 인턴도 경험도 쌓았지만, 최종적으로 Oracle Linux Core Kernel 팀에 합류하게 되었다. 2월부터 이 팀에서 메모리 관리 서브시스템 개발을 맡게 되었다. 기존에 작업하던 슬랩 할당자도 하고, 여기에 더해 메모리 관리 서브시스템에서 분야를 점점 넓혀보려고 한다.
취준 기간 동안 어떤 팀에서 일을 해야할지를 많이 고민했다. 여러 회사에 지원하다보니 나만의 기준이 꼭 필요했다. 나는 다음의 기준에 따라서 최종적으로 Oracle Linux Core Kernel 팀을 선택했다.
- 업스트림 리눅스 커널 개발, 특히 메모리 관리 서브시스템을 개발하는 팀인가?
- 팀이 조직적이고 체계적인가? 내가 하려는 일과 팀의 미션이 일치하는가?
- 이 팀에 합류하고 5년 뒤의 내 모습은 어떨까. 팀에서 일하면서 향후 5년간 많이 성장할 수 있을 것인가?
나는 내 선택이 '올바른' 선택을 한 것인지 많이 고민했다. 하지만 선택에 정답은 없다. 다만 내가 내린 결정이므로 믿고 나아갈 수밖에 없다. 설렘 반, 걱정 반이지만, 이제 하고 싶은 일을 업으로 삼게 되었으니 최선을 다해야겠다.
올해를 되돌아보며
번아웃 조심하기
올해도 벌인 일들이 정말 많았다. 특히 6월~9월 동안 논문을 쓰면서 학교 수업도 듣고, 동시에 인턴십도 했던 기간이 정말 번아웃 직전까지 나를 몰아갔다 (놀랍게도 번아웃이 오지는 않았다). 일을 많이 벌리는거야 뭐... 늘 그래왔지만, 2025년에는 적어도 벌이는 일들이 너무 겹치지 않게 조절을 해야겠다.
다사다난했던 취업 준비
4학년이 되면서 올해 나의 중요한 목표는 커널 개발이라는 취미를 더 이상 취미가 아닌 커리어로 바꾸는 것이었다. 운이 좋게도 커널을 개발할 수 있는 포지션에 지원할 수 있어 도전했다. 분야가 좁고, 경력이 없는 만큼 취업 준비가 쉽지는 않았다. 인턴을 했던 회사들 말고도 여러 곳에 지원했고, 코딩 테스트와 면접을 봤고, 합격하기도, 탈락하기도 했다.
올해는 취업 준비를 하면서 정말 설렘, 기다림, 걱정, 선택의 순간이 너무나도 많았던 다사다난했다. 취준 기간 초반에 몇몇 회사에서 일할 기회가 주어진 반면, 내가 더 일하고 싶은 곳의 결과가 나오지 않아서 오퍼를 거절하고 새로운 곳에 도전하는 것을 여러 번 반복했다. 쉽지 않은 결정이었지만 도전을 했다가 백수가 되는 것보다 도전을 안 하고 후회하는 게 더 싫었다.
2025년
메모리 관리 분야 전문성 쌓기
2023년 회고에도 2024년에는 MM을 더 잘 알고싶다고 썼다. 어느 정도는 더 잘 알게 되었지만, MM 외에도 신경쓸 것이 많아 올해에는 그렇게 시간을 많이 쏟지는 못했다. 이제 풀타임으로 MM을 볼 시간이 생겼으니 각잡고 많이 봐야지.
계획적인 돈 관리
이제 정기적인 월급을 받고 직장 생활을 하는 만큼, 더 계획적으로 저축과 소비를 해야겠다. 이제는 당장의 소비보다는 미래의 나를 위해서 저축과 투자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취미 만들기
2024년에는 마음의 여유가 많이 없었다. 일도 좋지만 일 바깥에서도 인생의 즐거움을 좀 찾아봐야겠다.
최근에 핸드드립 커피를 내려 마시기 시작했다. 원두가 가공 방식이나 재배지에 따라 어떻게 맛이 다른지, 어떤 원두가 내 취향에 맞는지를 찾아가는 과정이 재미있다. 비슷하게 위스키 취향도 점점 찾아가고 있다.
작년에 미국에 있을때 Chicago Symphony Orchestra에서 첼로 연주를 들었을때 음색이 참 좋았는데, 오케스트라 공연을 듣거나 첼로 연주를 배워보고 싶은 생각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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